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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희망버스 김진숙연설문
  • 글쓴이 금홍섭
  • 작성일 2011-08-30 17:36:12
  • 조회수 3180

이 크레인에 올라와 두달째가 된 박성호 동지의 아들 박슬옹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슬옹아, 니가 태어날 때 아빠는 감옥에 있었다.
만삭이 된 아내를 두고 징역을 살면서 슬기롭고 옹골차게 자라라고 니 이름을 지어줬던 아빠는 니가 돌이 될 무렵에야 비로소 너를 품에 안을 수 있었다.

 

해고자 복직투쟁을 하다 세 번째 징역을 갔고 그땐 주익이 아저씨도 재규 아저씨도 아빠의 곁에서 함께 싸웠다.
박창수 아저씨의 죽음으로 해고됐던 아빠는 주익이 아저씨의 죽음으로 13년 만에 복직을 했다.
생목숨을 차례차례 묻은 댓가였던 복직은 5년 만에 다시 해고로 되돌아왔고, 이 85호 크레인까지 오른 니 애비의 삶이 한진 노동조합의 피눈물 나는 역사이고 피맺힌 한이다.

 

슬옹아, 아침부터 밤중까지 크레인 주변을 맴도는 슬옹아.
열 다섯살 니가 이해하기에도 짊어지기에도 크레인은 참 무겁다.
2차 희망버스 때 쏟아지는 물대포를 피하다보니 엄마와 누나를 잃어버렸고, 엄마와 누나가 연행됐다는 소식을 듣고 너의 비겁함 때문에 부끄러웠다 했느냐.
비겁한건 니가 아니라 자신의 탐욕을 위해 니 애비를 짜른 재벌이다.
부끄러운 건 니가 아니라 애비는 크레인에 올라와 있고, 엄마와 누나는 잡혀가고 열다섯 살 너를 길바닥에 혼자 남겨뒀던 부당한 권력이다.

 

 

네 아빠가 너보다 조금 컸던 나이에 이 회사에 취직하던 날.
네 할머니는 밥을 안 먹어도 배고픈 줄 모를 만큼 기뻐하셨다더구나.
그러나 할머니는 아들이 고향에 찾아오는 것 보다 더 자주 아들의 면회를 다녀야 했고, 공장에 있는 시간보다 쫓겨나 싸우는 세월이 길었던 아들을 지켜보셔야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빈소에 엎드려 울던 네 아빠의 모습을 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슬옹아, 아빠는 혼자서도 집 한 채를 뚝딱 지을 만큼 못하는 게 없는 일류 기술자다.
그런 뛰어난 기술로 배를 만들어 왔고 그렇게 배만 만들고 살았으면 좋으련만 아빠는 배 만드는 일보다 노동자들 장례 치르는 일을 더 많이 하고 살았던 사람이다.
누구의 부탁도 거절하지 못할 만큼 사람 좋고 그러면서도 원칙 앞에선 절대 타협하지 않았던 네 아빠는 진짜 노동자다.

 

슬옹이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아빠를 만나 이제 같이 늙어간다.
슬옹아, 난 네 아빠가 다시 공장에 들어가 기름때 묻히며 작업복에 소금꽃 허옇게 피우며 일하는 걸 꼭 다시 보고 싶다.
그 꿈을 지켜주겠다고 여길 올라왔는데 이젠 네 아빠가 날 지켜주기 위해 여길 올라와 있구나.
다음주 개학해서 학교로 돌아가더라도 네 마음은 저 길 건너편 네가 온종일 앉아 크레인을 바라보던 그 자리에서 아빠를 지켜보고 있겠지.
그런 너에게 공부 열심히 하란 말을 나는 할 수가 없구나.
니가 좀 더 자라 내가 니 애비를 만났던 나이쯤 되면 꼭 대학에 안가더라도 노동자가 대우받는 그런 세상이면 좋겠다.
비정규직이라고 설움 받고 차별받는 이런 세상이 아니면 좋겠다.

슬옹아, 아빠랑 목욕 가는 게 소원이라던 슬옹아.
그 평범한 일상이 소원이 돼버린 슬옹아.
이번 추석엔 부디 그 소원이 이루어져서 아빠랑 같이 목욕가고 할머니 산소에 같이 갈 수 있길 간절히 바래본다.

박슬옹 파이팅!

희망버스 여러분, 크레인의 계절은 어느새 늦가을입니다.
4계절을 다 살게 됐군요.

 

 

암흑천지 크레인에 부분적이나마 전기가 들어왔고 어제는 책이 올라왔습니다.
그 당연한 일들이 기적이 되는 곳, 85호 크레인입니다.
234일을 꿈쩍 않던 무쇠덩어리 크레인에도 서서히 변화가 오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만들어 내고 새로운 발자욱을 남긴 희망버스 여러분들의 힘입니다.
어떤 탄압에도 우리는 흔들리지 않았고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멀리서 모여주신 여러분들, 여러 어르신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여기 다섯명의 형제들 건강하게 잘 견뎌 내겠습니다.
단식 13일차 신동순 동지도 잘 견디고 있습니다.
반드시 여러분들과 함께 승리의 기쁨을 나누겠습니다.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85호크레인 234일차
                                                              김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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