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희망을 묻으며
- 이 나라 아비어미에게 부치는 편지
그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그것은 행복이 아닙니다.
부패한 세상을 묵인하고 얻은 그것은
희망도 행복도 없는 비인간의 무덤입니다.
권력의 폭력을 외면하고 얻은 그것은
소망도 나눔도 없는 비인간의 묘지입니다.
죽은 희망에 눈먼 아비들이여
죽은 행복에 취한 어미들이여
이제, 죽은 희망을 묻어야합니다.
이제, 죽은 행복을 끊어야합니다.
이웃을 짓밟고 얻은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친구를 따돌려 얻은 것은 행복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그토록 꿈꾸었던 세상은
아비보다 자식이 먼저 죽는 세상이 아닙니다.
어미보다 자식을 먼저 묻는 세상이 아닙니다.
그런데, 세상이 자식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한 두 아이가 아닌 수백의 자식들이 몰살당했습니다.
그 어미아비는 주검조차 못 건져 혼비백산 울부짖습니다.
죽어야 할 것은
우리들의 미친 욕망인데
우리 자식들이 대신 죽었습니다.
영영 죽어도 좋을 것은
승자독식의 살벌한 경쟁인데
우리 자식들이 대신 죽었습니다.
그 아이들은 우르르 피는 봄이었습니다.
가난한 안산에 희망이었던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월의 꽃이어야 할 안산의 아이들이
그런데, 종달새로 우짖어야 할 안산의 아이들이
이 나라의 거짓 희망을 기다리다 주검이 됐습니다.
시퍼런 주검으로 죽음의 바다를 아직 떠돌고 있습니다.
죄 없는 아이들의 떼죽음 앞에서
아비어미인 우리는 무거운 죄인입니다.
아이들을 죽인 권력을 선출한 부역자이고
아이들을 죽인 정부를 지켜본 방조자입니다.
이 권력과 이 정부를 이대로 두면
내 자식이 죽임 당할 날이 올 것입니다.
참혹한 그날이 도둑처럼 오면 베옷을 뒤집어쓰고
울부짖는 아비어미가 되어 가슴을 찢을 것입니다.
이 권력이 죽인 것은 아이들만이 아닙니다.
제발 살려달라는 아이들의 비명을 끊어버린
이 나라 권력은 언론의 숨통을 조이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짓밟고, 시민의 생존권을 유린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몰살시킨 죄를 참회하기는커녕 유족을 우롱하며
정보원과 행정력을 총동원해 분노하는 국민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목숨이 위험한 이 나라에선 생명 존중은 없습니다.
국민의 책임만 있을 뿐인 이 나라에서 희망은 사라졌습니다.
통치자의 무한권력만 보장하는 신독재공화국에서
폭력에 쫓기며 사는 우린 국민이 아니라 노예입니다.
권력의 두려움에 떠는 우린 자기 검열하는 신민입니다.
봄꽃도 자식도 행복하지 않은 이 나라에서
하늘도 식구도 희망차지 않은 이 나라에서
권력과 재벌만 행복한 승자독식의 이 나라에서
형제도 이웃도 없는 무한경쟁의 이 살벌한 나라에서
끝끝내 거짓 희망에 붙들린 노예로 살다 죽고 싶지 않습니다.
권력의 하수인으로 살다 자식을 죽이는 아비가 되지 않겠습니다.
내 자식만 1등 만들려다
내 식구와 부유하게 살려다
끝끝내 참살(慘殺)당하고 마는
이 나라 죽음의 땅과 바다에
부패한 거짓 희망을 묻습니다.
도취한 거짓 행복을 묻습니다.
그리하여, 자식과 함께 살기 위해 촛불을 켜렵니다.
그리하여, 이웃과 함께 살기 위해 싸움을 하렵니다.
내 자식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켤 수 없는 희망의 촛불
내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켤 수 없는 행복의 촛불
심장에 불붙인 이 촛불은 권력도 폭력도 끌 수 없습니다.
참 희망이고 참 행복인 촛불로 인해 우리들은 살 것입니다.
이 나라의 가난한 아비어미여
이 나라의 힘없는 아비어미여
빈손에 희망의 촛불을 어서 드세요.
나약한 가슴에 용기의 촛불을 켜세요.
두려운 입술로 뜨거운 노래를 불러요.
산고로 낳은 내 자식새끼를 살리기 위하여!
--.내손동 <어게인 그룹홈> 대표 시인 조호진
2014.5.9